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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문사의 절 천장 문양을 신기한듯 쳐다보는 티베트 스님들. 왼쪽 네번째가 최고 연장자 롭상 쬔뒤 스님, 그 옆이 청전 스님, 맨 오른쪽이 가장 오지에서 온 체링 도르제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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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노숙하며 걸어야 갈 수 있는 오지
청전스님 초청으로 난생 처음 비행기
자판기 보고 “누구있냐”…천진함에 ‘감동’
낯선 땅 찾은 순진한 웃음속에 부처가 보이네
바로 그 웃음이었다. 털끝만큼의 부족도 없이 온 마음을 담은 노승의 웃음이 얼마만이던가.
지난 21일 경북 청도 운문사에 인도 히말라야 오지 라닥과 다람살라의 티베트불교 승려 6명이 찾아왔다. 애초 티베트 땅이었다가 인도령에 편입된 라닥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란 책으로 세상에 알려진 오지다. 이들은 지난 20년 동안 티베트의 정신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지도로 다람살라에서 수행해온 송광사 출신 청전 스님의 안내로 난생 처음 비행기에 올랐다. 청전 스님은 매년 여름 라닥의 오지 마을을 찾아 의약품을 전달하며 오지 사람들을 돕고 있다.
일행 가운데 최연장자인 롭상 쬔뒤(81) 스님과 툽텐 왕걀(73) 스님은 기자가 4년 전 히말라야 오지 티베트 사찰들을 순례할 때 무려 한 달간이나 동행했던 구면이었다. 다른 세상에서 사는 듯한 그들을 한국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곤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운문사 경내에 들어가니 그들도 방금 도착한 듯 마당에 서서 운문사 스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두 노승은 지인을 한눈에 알아보고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툽텐 왕걀 스님은 4년 전보다 많이 노쇠해져보였지만 해맑은 웃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가운데 몇 주 동안 한방에서 함께 기거하면서도 조금의 불편도 느끼지 않았던 4년 전과 다름 없이 온전한 마음을 담은 웃음 외에 더 이상 나눌 것은 없었다.
서울 안국선원과 전남 송광사, 여수 석천사, 울주 마하보디센터, 대구 동화사, 합천 해인사, 경주 불국사, 양산 통도사 등 절을 돌고, 한국 불자들의 집에서 민박도 한 이들은 지난 3주 동안 평생 동안 히말라야에서 본 것보다 더욱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방문자 중 롭상 텐진(42) 스님은 티베트 난민 출신으로 그의 여동생은 티베트 독립운동을 벌이다 중국 공안에 의해 고문사 당했다. 또 페마 네기(42) 스님은 은둔의 수행자였던 툽덴 외셀 린포체를 모시고 살아왔다. 외셀 린포체는 2001년 73살로 좌탈 열반(앉은 채로 사망)하면서 완벽한 포와(의식이 깨어있는 가운데 열반에 드는 것)를 보여준 고승이었다.
아름다운 운문사 경내를 구경하던 중 출진 툽톱(68) 스님과 체링 도르제(60) 스님은 모든 것이 신기하고 궁금해 죽겠다는 듯 개구장이같은 표정으로 눈에 띄는 물건들을 들여다보고 만져보았다. 툽톱 스님은 라닥에서도 오지인 잔스카에서 살고 있다. 도르제 스님은 라닥에서 이틀에 한번씩 오가는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 뒤 다시 4일 동안 노숙을 하며 걸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지상 최대의 오지마을에서 왔다.
그런 이들은 불국사에선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가 자동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이 안에 누가 들었냐?”고 진지하게 물어 주위 사람들의 배꼽을 빼놓았다.
광주에선 청전 스님이 평생 건강진단 한번 받아보지 못한 노승들을 한방병원에 데려가 진단을 받게 했다. 티베트 승려들은 팬티나 내의를 입지 않고 치마만 입는데, 한국인처럼 당연히 속옷을 입었을 것으로 생각한 간호원이 무릎 관절을 보기 위해 치마를 들쳐버려 열살에 출가한 이래 여성에겐 한번도 보인 적이 없던 쬔뒤 스님의 아랫도리가 그대로 드러나고 만 것. 청전 스님이 이 얘기를 꺼내면 쬔뒤 스님은 조용히 미소만 지었고, 다른 스님들은 얼굴을 붉혔다.
털끝만한 권위도 내세우지 않은 채 순진무구한 웃음을 본 불자들은 자신도 알 수 없는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들이 운문사에 오기 직전에 간 통도사 지장암은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세우기 전 절벽 바위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어 살게 했다는 금개구리가 불심이 깊은 사람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전설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이 스님들이 그 구멍을 들여다본 순간 추운 겨울날씨임에도 금개구리가 모습을 내밀어 불자들은 “히말라야에서 온 이 스님들의 청정함을 금개구리가 먼저 알아보았다”며 환희롭게 여겼다.
운문사에서의 밤. 청전 스님은 기자에게 4년 전처럼 쬔뒤 스님과 한방을 쓰게 했다. 다음날 새벽 청전 스님이 들어와 “무슨 꿈이라도 꾸었느냐”고 묻자 쬔뒤 스님은 “꿈에 모처럼 부처님을 뵈었다”고 했다. 쬔뒤 스님은 꿈에 부처를 보는 동안 동숙인은 ‘살아있는 천진불’ 옆에서 피안의 단잠을 잤다.
청도 운문사/글·사진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동영상 인터넷한겨레(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