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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교 조계종 원로회의에서 ‘비구니 스님의 가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10월 한국불교 사상 처음으로 명사(대종사 반열) 법계를 받은 여섯 명의 비구니 스님에게 ‘25조 가사’를 내릴 지를 놓고 토론이 벌어진 것. 갑론을박이 오갔지만 결국 비구니 스님에게도 ‘25조 가사’가 내려졌다. 비구와 비구니 스님간 구별이 있는 조계종단에선 나름대로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결정이었다.
그런데 가사면 가사지, 25조 가사는 뭘까. 알고보니 천 조각 25개를 붙여서 만든 가사란다. 천 조각 수가 많을수록 승가에서 높은 지위를 상징한다고 한다. 배경이 있었다. 조계종 총무원 교육국장 성해 스님은 “부처님 당시에는 가사를 ‘분소의(糞掃衣)’라고 불렀다. ‘똥이 묻어서 버린 천으로 만든 옷’이란 뜻”이라고 했다. 부처님 당시 인도의 승려들은 시신을 쌌던 천이나 버려진 천 조각을 기워 가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출가한 지 오래된 스님의 가사일수록 기운 천의 조각 수가 많았다고 한다. 현재 조계종에는 품계에 따라 7조 가사부터 25조 가사까지 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가사’에도 이런 의미가 있다니 놀라웠다. 그런데 가사의 색깔에는 더욱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녹아 있었다. 조계종 승려의 가사는 ‘괴색(壞色)’이다. ‘원래 색에서 멀어진 색’이란 뜻이다. 옛 인도에선 똥이 묻거나, 시신을 쌌던 천 조각에 황토로 물을 들여 원래 색을 뺐다고 한다. 총무원 원철 스님은 “불교 수행은 내가 가지는 상(相)을 다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 가사의 괴색에는 ‘무아(無我)’와 ‘무소유(無所有)’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이에 반해 불교 태고종의 가사는 붉은 색이다. 전통가사연구원 정지상 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에 수행을 위해 온몸에 피를 흘린 일화가 있다. 붉은 가사는 ‘부처님의 피’를 의미한다. 그처럼 피나는 수행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인도에선 가사를 ‘적혈색의(赤血色衣, 붉은 핏빛의 옷)’라고도 불렀다는 것이다. 불교 뿐만 아니다. 각 종교별 성직자 복장에는 해당 종교의 지향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래서 옷은 그들에게 ‘입을 수 있는 경전’이자,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단추 달린 거울’이기도 했다.
그럼 신부님들의 옷은 왜 검정색일까. 가톨릭 예수회의 조학균 신부에게 물었다. “검정색은 ‘죽음’을 뜻한다.” 첫마디부터 뜻밖이었다. 죽음이라니, 왜 하필 죽음일까. “‘수단’이라 부르는 검정옷은 신부들에겐 일종의 상복(喪服)이다. 사제는 그걸 입고서 자기자신의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검정 수단은 이 땅에서의 죽음, 세속에서의 죽음을 뜻한다. 더불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포기도 의미한다.” 대답을 듣자 숙연함이 밀려 왔다. 다름 아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상복이라니 말이다. 그럼 추기경의 수단은 붉고, 교황의 수단은 흰 이유는 뭘까.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붉은 색은 ‘순교자의 피’를, 흰 색은 ‘하느님의 대리자’를 나타낸다고 한다.
색깔에 대한 궁금증은 다소 풀렸다. 그런데 로만 칼라의 앞이 트인 이유는 뭘까. 거기로 드러나는 흰 칼라의 네모난 모양은 ‘신부’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대한성공회 김현호 신부는 “사제들 사이에선 그게 일명 ‘개 목걸이’로 통한다”고 설명했다. 아니, 성스러운 사제복을 가리켜 ‘개 목걸이’라니 무슨 말일까. 김 신부는 그 의미를 설명했다. “거기에는 ‘내 뜻대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게 하소서’라는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대로 내가 끌려갈 수 있게 해달라는 의미에서 그런 별명이 생긴 것이다.” 반면 개신교는 성직자의 복장이 자유롭다. 설교 때 목사님들은 가운도 입고, 양복도 입는다. 또 티셔츠를 입기도 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박승철 목사는 “청교도 전통에선 ‘사제’라는 중간 매개 단계가 없다. ‘만인이 제사장’이란 입장이다”라고 했다. 즉,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 일대일 관계라는 뜻이다. 박 목사는 “그래서 목회자도 성도 중 한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굳이 사제복이란 유니폼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형식과 계급, 차별에 대한 타파가 개신교의 자유로운 복장에 담긴 의미라고 했다. 원불교 교무님(성직자)들이 입는 옷도 흥미롭다. 하상덕 교무는 “원불교가 불상을 일원상(동그라미)으로, 기다란 가사를 목에 거는 간결한 ‘법락’으로 바꾼 데는 이유가 있다”며 “형식을 붙들지 말고 본질로 바로 들라는 원불교의 가르침이 거기에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초기만 해도 원불교 여성 교무들의 저고리와 치마 복장은 ‘파격’이자 ‘진보’였다. 긴 옷고름을 짧게 잘랐고, 머리도 땋아서 쪽지는 대신 짧게 말아서 올렸다. 원불교 최원심 교무는 “일제시대만 해도 여성 교무의 복장은 ‘신여성의 첨단 패션’이었다”며 “원불교가 그만큼 ‘생활화’와 ‘간결화’를 중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불교는 최근 여성 교무 복장에 대한 현대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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