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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a73 종묘

이즘(ism) 2008. 4. 15. 07:24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총면적 5만 6503평. 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있다. 원래는 정전(殿)을 가리키며, 태묘()라고도 한다. 중국의 우()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종묘제도는 은()·주() 시대에는 7대조까지 묘()에 봉안하는 7묘제가 시행되다가 명()나라 때에는 9묘제로 바뀌었다. 한국의 경우 종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392년(고구려 고국양왕 9)에 보이며, 신라에서는 5묘제, 고려에서는 7묘제로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7묘제도를 따르다가 중기 이후부터는 치적이 많은 왕은 7대가 지나도 정전에 그대로 모셨으며, 그 밖의 신주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영녕전(殿)으로 옮겨 모셨는데, 이를 조천(祧)이라고 하였다.

종묘의 정전에는 19실()에 19위의 왕과 30위의 왕후 신주를 모셨으며, 영녕전에는 정전에서 조천된 15위의 왕과 17위의 왕후 및 의민황태자()의 신주를 모셨다. 신주의 봉안 순서는 정전의 경우 서쪽을 상()으로 하고 제1실에 태조가 봉안되어 있고, 영녕전에는 추존조()인 4왕(목조·익조·탁조·환조)을 정중()에 모시고 정전과 마찬가지로 서쪽을 상으로 하여 차례대로 모셨다. 이를 소목제도()라고 한다.

종묘의 조영()은 1394년(태조 3) 12월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할 때 중국의 제도를 본떠 궁궐의 동쪽에 영건()을 시작하여 다음해 9월에 1차 완공하였다. 그 뒤 1546년(명종 1)까지 계속되었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8년(광해군 즉위년)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정전의 남문을 들어서면 동쪽으로 문의 동쪽으로 공신당(), 서쪽으로 칠사당()이 있고, 곧바로 정전에 이른다. 정전의 서문을 나서면 영녕전의 동문과 이어지고, 영녕전에도 정전과 같이 서문·남문·동문이 있으며, 영녕전의 북동쪽에 제기고()가 있다. 정전의 북동쪽에는 전사청()이 있고, 그 주위에 제정()·판위대(수복방()이 있으며, 정전 남동쪽에 재실()이 있다.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팔만대장경,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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