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우리 공연계는 분주하게 움직일 전망이다. 뮤지컬·연극·무용·클래식 등 새로운 콘텐트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할 채비를 하고 있다. 상차림 또한 예년보다 푸짐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 공연팀이 2008년 가장 주목 받을 공연 세 편을 뽑았다. ‘화제만발’ 코너로 묶어보았다. 무대가 크고 화려해 벌써부터 기대되는 작품들이다. 또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소박한 무대도 세 편 간추렸다. ‘숨은 보석’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숨겨진 손맛을 미리 맛보자는 취지다.
최민우·김호정 기자
화제 만발 두들기고,웃고…소리·색의 난장 넌버벌 퍼포먼스‘블루맨 그룹’
1991년 미국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의 조그마한 극장에서 초연됐다. 그런데 아직도 공연 중이다. 무려 18년째다. 여전히 객석은 가득 차고, 관객은 소리를 지르며, 앞줄엔 페인트가 튈까 비옷을 머리 위까지 쓰는 희한한 풍경이 벌어진다.
대사가 없는 넌버벌 퍼포먼스다. 출연진은 단 세 명. 이 작품의 생명력은 물론 재미다. PVC 등 별의 별 물건들을 두들기며 토해내는 음악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생경한 소리의 세계로 이끈다. 여기에 다채로운 색깔과 추상화된 퍼포먼스는 흡사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현대 미술의 정수를 느끼게 해준다. 한국 공연의 열쇠는 작은 무대에서 탄생한 ‘블루맨’의 밀착성을 대공연장에서도 재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올림픽홀에서 3주간 공연된다.
▶6월경. 장소 미정
경극+발레+색채감+스피드=? 장이머우의 무용극 ‘홍등’
규모부터 입이 쩍 벌어지게 한다. 출연 무용수만 무려 65명. 오케스트라는 전통악기 연주자 13명 등 72명이나 된다.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무장해 중국 무대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감독은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 영화제 최고상(금곰상)을 수상한 장이머우(57). 그는 자신이 영화로도 만든 영화 ‘홍등’을 퓨전 무극으로 탈바꿈시켰다. 무대엔 중국 전통 경극과 발레가 혼합된다. 여기에 영화적 연출기법을 덧붙였다. 빠른 무대 전환, 원색적인 의상 등으로 색채감과 스피드를 강조한다. 21세기 중국이 세계를 향해 어떤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지를 체감시켜 준다.
▶10월17일∼30일. 성남아트센터·국립극장·고양아람누리극장 등
세계정상의 선율 재확인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
1940년대 후반 유명한 지휘자 두 명이 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세르지우 첼리비다케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먼저 데뷔한 첼리비다케는 유럽의 무대를 휩쓸며 무섭게 성장한 신예 카라얀을 견제한다. 역사적 두 지휘자가 탐낸 것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자리였다. 이처럼 이 교향악단을 맡는 것은 지휘자에게 최고의 영예다. 베를린필은 1882년 54명의 단원으로 시작한 이래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오케스트라다. 단단한 소리와 정확한 표현력으로 세계적 팬을 확보하고 있다. 베를린필이 다시 한국을 찾는다. 2005년 11월 내한에서 명성에 걸맞은 연주를 선보인 지 꼭 3년 만이다. 브람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이번에도 ‘11월의 황홀함’을 남길 수 있을지 주목 받고 있다.
▶11월 20일, 21일 예술의전당
숨은 보석
바흐 대가, 마침내 서울 온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대형 오케스트라가 잇달아 내한하는 2008년, 조용히 피아노 소리가 울린다. 쉬프는 마우리치오 폴리니, 알프레드 브렌델과 함께 한국을 찾지 않은 명 피아니스트 목록에 있던 연주자다. 개인 조율사를 대동해 피아노의 음색을 고를 정도로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는 쉬프는 그 동안 한번도 내한하지 못해 팬들의 아쉬움을 키웠다. “글렌 굴드 이후 최고의 바흐 해석”이라는 평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그의 연주를 그간 음반으로만 접할 수 있었다.
수년 동안의 설득 끝에 2008년 쉬프의 공연이 성사됐다.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흠결 없는 음색을 입히는 그의 전설적인 바흐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기회다.
▶2월 24일 예술의전당
브루크너 대장정 다같이 도전 임헌정과 부천 필
지휘자 임헌정과 부천필이 올해 또 산맥을 넘는다. 이번엔 브루크너의 교향곡 9개 전곡 연주다. 지난해 11월 9번 교향곡으로 시작한 도전은 올해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한해 동안 4개의 교향곡과 함께 바그너·슈베르트 등을 짝지어 함께 연주한다. 올해 연주하고도 남은 네 곡은 2009년으로 넘어간다. 이들이 한 작곡가의 모든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은 이번이 네 번째. 브람스·베토벤에 이어 1999년 말러에 도전했을 때는 국내에 말러 유행을 불렀다. 이번 과제인 브루크너는 특히 각 교향곡이 대부분 한 시간 넘게 길고 음악적 구조도 복잡하다. ‘공부하는 지휘자’ 임헌정은 마치 수도승처럼 고난의 연주를 선택해, 자신만의 봉우리를 향해가고 있다.
▶2월 29일 부천시민회관, 6월29일 예술의전당, 8월29일 부천시민회관, 11월30일 예술의전당
결혼? 독신? 한번 쿨하게 말해봐 뮤지컬 ‘컴퍼니’
지난해 잔혹 뮤지컬 ‘스위니 토드’로 국내에도 확고한 팬을 확보하게 된, 미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천재 작곡가 겸 작가 스티브 손드하임(78)의 작품이다. 전작과 달리 경쾌하면서도 풍자적으로 결혼과 독신의 자유를 설파한다. 주인공은 서른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미국 뉴욕 맨하튼에 사는 로버트. 부모와 주변 친구들의 잔소리에 시달리면서도 확실한 결혼 상대자를 찾지 못해 방황한다. 그를 둘러싼 주변 커플들의 결혼 생활이 하나 둘씩 생생하게 그려지는 게 작품의 매력. 극이 끝날 때까지 로버트는 여전히 독신이다. 성공적인 결혼생활이란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짓지 않는다는 점에서 작품은 쿨하고 현대적이다.
▶5월 하순∼8월초.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