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악산 제비봉 중턱에서 충주호 장회나루 쪽을 내려다본 풍경. 장회나루 쪽에서 올라 어름골로 하산할 수도 있지만, 이런 풍경을 마주 보며 내려오려면 다시 장회나루로 돌아오는 코스를 택하는 것이 좋다. |
▲ 장회나루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이 옥순봉을 돌아가고 있다. |
▲ 장회나루 건너편에서 제비봉으로 오르는 초입의 계단길. 제비봉은 암봉인 데다 경사가 가팔라 그리 높은 산이 아님에도 숨이 턱에 닿는다. | | |
이른 봄 신록이 시작될 때의 산도 아름답고, 녹음이 우거진 여름 산이나 단풍으로 물든 가을 산도 좋지만, 등산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들은 ‘좋기로 말하자면, 겨울 산만한 것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심설(深雪)이 있는 산길을 오르노라면 황홀함마저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올겨울은 눈이 늦어 눈 산행은 아직 이르다. 하지만 눈이 없다고 해도 나뭇잎을 다 떨군 청정한 숲 사이로 산길을 따라 오르자면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신선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겨울 산의 또 다른 매력이다.
겨울 산의 이런 매력을 느끼기에는 쌓은 ‘내공’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겨울 산이 선사하는 탁월한 전망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리라. 겨울 산에서는 전망을 가리던 활엽수들이 모두 잎을 떨궈 탁 트인 시야를 즐길 수 있다. 이런 때 높은 시선으로 거침없는 풍광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고 아름다운 산을 골라 찾아가보자.
충북 단양군 단성면 월악산 자락 충주호반을 끼고 솟아있는 제비봉(721m). 단양팔경으로 꼽히는 구담봉과 옥순봉에서 동남쪽 머리 위로 올려다보이는 바위산이 바로 제비봉이다. 유람선을 타고 구담봉 쪽에서 봉우리를 보면 날랜 제비가 사뿐히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월악산, 금수산, 소백산, 도락산 등 명산에 가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몇 년 사이 충주호를 내려다보는 전경이 아름답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실제로 이 봉우리에 오르면 충주호의 푸른 물빛이 건너편 금수산의 수석 같은 풍경과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제비봉 산행은 어찌 보면 멋대가리 없다. 대부분의 다른 산들이 계곡을 따라 힘겹게 산길을 오른 뒤 능선을 밟은 뒤에야, 마치 노고에 대한 보상처럼 장쾌한 전망을 보여주는 데 반해 제비봉은 가파른 계단길로 들어서는 들머리부터 충주호의 아름다운 전망을 곧바로 들이댄다. 제비봉 등산로는 유람선 선착장인 장회나루 부근에서 시작된다. 등산로는 초입부터 숨이 턱턱 차오르는 가파른 흙계단길이다. 이 계단을 불과 10분만 오르면 앞이 탁 트이는 전망을 가진 바위를 만난다. 너무 쉽게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는 것 같아 왠지 싱거운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경치를 만나는 과정이 싱겁다는 것일 뿐, 그 산과 물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경관은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친 것처럼 아름답다. 충주호의 푸른 물 위로 유람선이 미끄러지고 구담봉과, 건너편의 바위를 드러낸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제비봉 등산로는 왼편은 학선이골, 오른편은 다람쥐골이 있는 능선을 따라 이어져 산행 내내 조망이 아주 좋다. 뒤쪽으로는 충주호의 경치가, 앞쪽으로는 암봉들 틈에서 몸을 비틀고 자란 소나무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마치 분재 전시장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다. 제비봉은 산행 코스가 그리 길지 않아 속도를 내기보다는, 여유 있게 이런 풍경을 감상하며 오르는 쪽을 택하는 것이 낫다.
제비봉 정상 쪽을 향할수록 길은 험해진다. 암봉을 로프를 붙잡고 오르거나 철계단을 타고 올라야 한다. 곳곳이 암벽 벼랑이라 아차하면 낭패를 당할 수도 있겠다. 눈이 쌓여있는 날이라면 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암봉이 높진 않지만, 암봉 양쪽이 단애를 이루고 있어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찾지 않는 편이 낫다.
이렇게 험한 길을 타고 오르면 544.9m의 봉우리다. 봉우리는 비록 이름을 갖진 못했지만, 제비봉에서는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를 최고로 쳐준다. 충주호의 물 너머로 우뚝 솟은 금수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내려서면 조망이 잠깐 사라졌다가, 숲길을 올라 해발 721m 제비봉의 정상에 서면 다시 전망이 열린다. 충주호는 물론이고 월악산에서 소백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등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금수산, 가은봉, 구담봉, 옥순봉, 말목산, 망덕봉이 모두 시야에 들어온다.
제비봉 산행에는 정상에서 어름골로 넘어가는 종주코스도 있지만, 충주호의 풍광을 내려다보며 하산하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일. 줄곧 뒤통수 쪽에 충주호가 있어 아쉬운 듯 뒤돌아보며 걸어야 했던 것이 오름길이었다면, 충주호를 품 안에 안은 듯 마주 보고 걸을 수 있는 게 하산길이다. 이렇게 원점회귀를 하면 코스는 왕복 5㎞ 정도. 대략 3~4시간 안팎이면 다시 장회나루로 돌아올 수 있다. 어름골로 종주해 하산하면 36번 국도로 내려오는데 버스가 서지 않는 곳이어서 산행의 들머리인 장회나루까지 돌아오려면 적잖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
제비봉은 산행시간이 짧은 편이라, 산을 다 내려오고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겨울 충주호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좋겠다. 비록 다른 계절과 같은 화려한 색깔은 없지만, 수묵화와 같은 겨울 호수의 정취도 빠지진 않는다. 유람선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면, 옥순봉 서쪽 충주호를 가로지르는 다리인 옥순대교에 올라보는 것도 좋다. 다리 부근의 전망대나 다리 위에서 보는 옥순봉과 구담봉의 모습은, 제비봉에서 굽어볼 때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일찌감치 서둘러서 시간 여유가 더 있다면, 아예 수안보 쪽까지 내려가 온천욕을 즐기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특히 수안보 쪽에서는 꿩요리가 유명하지만, 온천지구 내 ‘해성정’(043-846-0495)은 찾아가볼 만하다. 지난해 충주시 음식경연대회에서 산채정식을 출품해 최우수상을 받은 집이다. 산채정식도 좋지만, 짙은 맛의 청국장이 일품이다.
충주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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