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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87 마리오님의 역사탐방기 3탄(서오릉)

이즘(ism) 2009. 12. 14. 19:05
서오릉 /서오릉(조선), 사적 제198호, 경기 ...
사적 제198호. 5릉은 경릉(敬陵)·창릉(昌陵)·익릉(翼陵)·명릉(明陵)·홍릉(弘陵)을 일컫는다. 1457년(세조 3) 세자 장(璋:뒤에 덕종으로 추존됨)이 죽자 이곳에 안장(경릉)한 이래 1470년(성종 1) 덕종의 아우인 예종과 그 계비인 안순왕후 한씨의 창릉, 1681년(숙종 7) 숙종의 비인 인경왕후 김씨의 익릉, 1721년(경종 1) 숙종과 그 계비인 인현왕후 민씨와 제2계비인 인원왕후 김씨의 명릉, 1757년(영조 33) 영조의 비인 정성왕후 서씨의 홍릉이 들어서 능의 무리를 이루었다. 그밖에 이곳에는 명종의 큰아들인 순회세자의 순창원(順昌園)이 경내에 있으며, 1970년에 숙종의 후궁인 희빈장씨의 대빈묘(大嬪墓)가 이곳으로 이장되었다.
경릉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왕릉은 왕의 것이 오른쪽에, 왕비의 것이 왼쪽에 조성되지만 이것은 반대로 왕릉이 왼쪽에, 왕비릉이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는 형식이다. 추존왕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왕릉에 나타나고 있는 난간석이나 망주석, 석수 등의 호위가 없다. 반면 왕비릉은 생전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므로 능제도에 따라 구색을 갖추었으며, 난간석의 기둥은 창릉의 형식을 따랐으므로 특이하다. 창릉도 몇 가지 특색을 지니고 있다. 즉 상석을 받친 석족(石足)은 일반적으로 4개의 양각 귀면이지만 창릉은 문고리 모양을 조각했으므로 북과 흡사한 느낌을 준다. 또 난간석의 기둥머리는 연잎과 연주문(連珠紋)이 보편적이지만, 창릉의 큰 석주는 둥근머리 밑에 환상받침을 마련하고 사각 석주로 변천되어가는 형식을 하고 있어 당시 일부 남아 있던 고려 왕릉의 석주양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명릉은 조선 능제의 분수령이 되는 것으로서 그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석물의 치수를 실물에 가깝게 했으며 부장품의 수량도 감소했다. 둘째, 문인석의 미소와 무인석의 늘어진 투구와 이마에 새긴 투구의 파상선 등은 1649년에 조영된 장릉 석인의 모습을 따르고 있다. 셋째, 8각의 장명등, 옥개를 4각형으로 제도화했다. 그리고 익릉은 기본적으로 〈국조오례의〉 제도를 따르고 부분적으로는 임진왜란 이후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홍릉은 명릉보다 20일 늦게 조성했으므로 상설제도나 석물양식은 거의 비슷하다. 가령 문인석은 용모나 복식상태 등에 있어서 그것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한 특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