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w-3 김포장릉~산책로~ 금정산~장릉

이즘(ism) 2008. 9. 1. 15:55

능호 : 장릉(章陵)
위치 : 경기 김포시 김포읍 풍무리(豊舞里)
지정번호 : 사적 제202호
조성시기 : 1627년(인조 5)
능의구성
장릉(章陵)은 인조의 아버지로 추존된 원종과 그의 비인 인헌왕후의 능이다. 쌍릉으로 조영되었다.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 없이 호석(護石 : 봉분 주위를 둘러 막는 돌)만을 두르고 있는데, 이는 왕이 아니었던 왕의 아버지, 즉 대원군의 묘제를 따른 것이다.
문석인은 머리에 복두를 착용하고 공복을 입은 채 석마와 나란히 서 있으며, 무석인은 장군의 형상으로 투구와 갑옷을 입고 있다. 문무석인 모두 무표정한 얼굴에 위엄이 서려 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르는 길인 참도가 다른 능과는 달리 약간의 경사진 계단식 형태이다. 정자각이 상대적으로 조금 높은 곳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정자각 동측에 자리한 비각은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각으로, 비문을 통해 능의 주인공과 그의 생전 행적을 알 수 있다. 홍살문 안의 비면에는 ‘조선국 원종대왕 장릉 인헌왕후 부좌(朝鮮國元宗大王章陵 仁獻王后左)’라고 쓰여 있으며, 1753년(영조 29)에 세워졌다.
근처에는 장릉의 원찰인 금정사(金井寺)가 자리하고 있다.
능의역사

원종은 1619년(광해군 11) 12월 29일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이듬해 2월에 양주군 곡촌리에 장사지냈는데, 그로부터 3년 뒤 큰 아들 능양군(인조)이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아들이 왕위에 오름에 따라 대원군에 봉해졌으며, 묘가 원으로 추숭되어 흥경원(興慶園)이라 하였다.
1626년(인조 4) 1월 14일에는 경희궁 회상전에서 원종의 부인이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같은 해 5월 18일 김포 성산의 언덕에 안장하고, 원호를 육경원이라 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 흥경원을 이곳 성산으로 천장하여 쌍릉을 조영하면서 원호를 흥경원이라 합칭하게 되었다. 1632년 이귀(李貴) 등의 주청에 따라 다시 원종으로 추존하여 능호를 장릉이라 하고 석물을 왕릉제로 개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