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사적 제19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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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서오릉(西五陵) |
분 류 |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829,792㎡ |
지 정 일 | 1970.05.26 |
소 재 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산30-1 |
시 대 | 조선시대 |
소 유 자 | 국유 |
관 리 자 | 서오릉관리소 |
서오릉은 5개의 왕릉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오릉 지역이 무덤지역으로 선택된 이유는 세조 3년(1457)에 세자 장(덕종)이 사망하자, 풍수지리설에 의해 경릉이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서오릉은 덕종과 소혜왕후의 경릉, 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무덤인 창릉, 19대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제2계비 인원왕후의 명릉,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의 무덤인 익릉, 21대 영조와 정성왕후의 무덤인 홍릉을 말한다. 서오릉은 동구릉 다음으로 큰 조선왕조 왕실의 가족무덤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품격에 따라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 왕의 생모·왕세자·빈의 무덤은 ‘원’, 대군·공주 등의 무덤은 ‘묘’로 구분하여 불렀다. 서오릉에는 5개의 능 이외에도 조선왕조 최초의 ‘원’으로 명종의 첫째 아들인 순회세자의 무덤 순창원과 숙종의 후궁으로 많은 역사적 일화를 남긴 희빈 장씨의 무덤이 있다. 서오릉(西五陵)은 추존(追尊)된 덕종(德宗)과 동비(同妃) 소혜왕후(昭惠王后)의 경릉(敬陵), 제8대(第8代) 예종(睿宗)과 동계비(同繼妃) 안순왕후(安順王后)의 창릉(昌陵), 제19대(第19代) 숙종(肅宗)과 동제1계비(同第1繼妃) 인현왕후(仁顯王后), 동제2계비(同第2繼妃) 인원왕후(仁元王后)의 명릉(明陵), 숙종(肅宗)의 원비(元妃)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익릉(翼陵), 제21대(第21代) 영조(英祖)의 원비(元妃) 정성왕후(貞聖王后)의 홍릉(弘陵)의 5릉(陵)이 55만(萬)3천여평(千餘坪)의 한 경역내(境域內)에 있으며 동구릉(東九陵) 다음으로 능(陵)이 많이 모여 있다. 서오릉(西五陵)에 최초(最初)로 능기(陵基)가 택정(擇定)되어 봉릉(奉陵)된 것은 경릉(敬陵)이다.
경릉(敬陵)은 추존왕(追尊王) 덕종(德宗)과 동비(同妃) 한씨(韓氏)의 능(陵)으로서 세조(世祖)의 원자(元子)이며 왕세자(王世子)에 책봉(冊封)된 장(璋) 세조(世祖) 3년(1457년) 9월 춘추(春秋) 20세(歲)로 훙서(薨逝)함에 길지(吉地)로서 고양(高陽) 동(東) 봉현(蜂峴)이 거론(擧論)되고 부왕(父王)인 세조(世祖)가 친행(親幸)하여 능지(陵地)로 택정(擇定)된 것이다. 덕종(德宗)은 세자시(世子時) 훙서(薨逝)하여 의경묘(懿敬墓)로 하였으나 성종(成宗) 7년(1476년) 덕종(德宗)으로 추존(追尊)되고 의경묘(懿敬墓)를 경릉(敬陵)으로 추숭(追崇)하였다. 경릉(敬陵) 이후 덕종(德宗)의 弟 예종(睿宗)의 창릉(昌陵)이 설릉(設陵)되고 200여년(餘年) 뒤 숙종(肅宗) 원비(元妃) 김씨(金氏)의 익릉(翼陵)과 숙종(肅宗)과 동제1계비(同第1繼妃) 민씨(閔氏), 제2계비(第2繼妃) 김씨(金氏)의 명릉(明陵)이, 30여년후(餘年後)인 영조(英祖) 33년(1757년)에 영조(英祖) 원비(元妃) 서씨(徐氏)의 홍릉(弘陵)이 마지막으로 설릉(設陵)되고 이후(以後) 서오릉(西五陵)으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서오릉(西五陵) 경내(境內)에는 순창원(順昌園)과 수경원(綏慶園) 및 대빈묘(大嬪墓)의 2원(園) 1묘(墓)가 있다. 조선조왕실(朝鮮朝王室)의 묘제(墓制)는 왕(王)과 왕비(王妃)는 능(陵)으로, 왕(王)의 생모(生母)인 사친(私親)이나 왕세자(王世子) 및 그 빈(嬪)은 원(園)으로, 대군(大君), 공주(公主), 옹주(翁主), 후궁(後宮)은 묘(墓)로 품격(品格)에 따라 차등(差等), 구분(區分) 호칭(呼稱)하였다. 순창원(順昌園)은 명종(明宗)의 제1자(第1子)인 순회세자(順懷世子)나 세자빈(世子嬪) 공회빈(恭懷嬪) 윤씨(尹氏)의 원(園)으로서 세자(世子)는 명종(明宗) 18년(1563년) 13세(歲)의 나이로 요절(夭折)하여 이곳에 장사(葬事)지냈으며 조선왕조(朝鮮王朝) 최초(最初)의 원(園)이다. 수경원(綏慶園)은 장조대왕(莊祖大王)의 사친(私親)이며 영조(英祖)의 후궁(後宮)인 영빈이씨(暎嬪李氏)의 원(園)이다. 영빈이씨(暎嬪李氏)는 영조(英祖) 40년(1764년) 훙서(薨逝)하여 경기(京畿) 고양(高陽) 연희(延禧) 신촌리(新村里)에 설원(設園)하였으며 한일합병(韓日合倂) 이후(以後)인 1920년대(年代) 당시(當時)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가 수경원(綏慶園) 인근(隣近)에 개교(開校)되어 학교(學校)가 확장(擴張)되면서 학교(學校) 교내지(校內地)의 일부(一部)에 수경원(綏慶園)이 위치(位置)하게 됨에 따라 200여년(餘年)이 지난 1968년 6월에 이곳 서오릉(西五陵) 경내지(境內地)로 천장(遷葬)하였다. 대빈묘(大嬪墓)는 경종대왕(景宗大王)의 사친(私親)이며 숙종(肅宗)의 후궁(後宮)인 대빈장씨(大嬪張氏)의 묘(墓)이다. 희빈장씨(禧嬪張氏)는 숙종(肅宗)의 후궁(後宮)이 되고 왕비(王妃)와 계비(繼妃)의 소생(所生)이 없어 장씨(張氏) 소생(所生) 윤(윤)이 왕세자(王世子)로 책봉(冊封)된 숙종(肅宗) 14년(1688년) 왕비(王妃)가 되었으나 숙종(肅宗) 20년(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로 강빈(降嬪)된 후(後) 동(同) 27년(1701년) 무고(誣蠱)의 옥(獄)으로 폐빈(廢嬪), 사사(賜死)되고 경기(京畿) 광주(廣州) 오포(五浦) 문형리(文衡里)에 설묘(設墓)되었으며 경종(景宗) 2년(1722년) 왕산부대빈(王山府大嬪)으로 추존(追尊)되었고 269여년(餘年) 후(後)인 1969년 6월 서오릉(西五陵) 경내(境內)로 천장(遷葬)됨으로써 숙종(肅宗)의 명릉(明陵)과 같은 서오릉(西五陵) 경역내(境域內)에 있게 된 것이다. 서오릉(西五陵) 경내(境內)엔 1960년대(年代)에 설치(設置)된 군(軍) 주둔지(駐屯地)가 있다. 상당(相當)한 면적(面積)에 이르는 이 주둔지(駐屯地)는 대북한(對北韓)과의 대치상황(對峙狀況)에서 군사목적상(軍事目的上) 설치(設置)된 것이기는 하나 그 위치(位置)가 서오릉(西五陵) 경내(境內) 능역(陵域)인 만큼 능역(陵域)으로서 보존(保存)되도록 환원(還元)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재실(齋室)은 동구릉(東九陵)의 예(例)와 같이 각(各) 능(陵)마다 있지 아니하고 서오릉(西五陵) 전역(全域) 아우르는 재실(齋室)이 서오릉(西五陵) 정면(正面) 출입로변(出入路邊)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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