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해해물칼국수 방명욱씨가 주방에서 반죽된 밀가루 덩어리를 칼로 썰고 있다. |
ⓒ 이승배 |
| |
해물칼국수 팔며 보낸 세월만 어느덧 10년
4일 오전 10시쯤, 서울시 동작구 흑석2동 51-1번지. 19m²(6평) 남짓한 부엌이 분주해졌다. "여보, 얼른 반죽 가지고 와." 방명욱(53)씨의 성화에 남편 김태성(54)씨가 양팔 한가득 반죽된 밀가루 덩어리를 들고 와, 도마 위에 내려놓는다.
방씨가 거대한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칼로 뎅강뎅강 썰더니, 면 뽑는 기계에 넣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금세 굵은 면발이 쏟아져 나온다. 창가 쪽에선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육수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하루의 시작은 항상 부부가 함께다. 매일 아침 밀가루를 반죽하고, 해물을 씻고, 그리고 배추를 다듬는다. 하루에 꼬박 10시간씩, 이곳서 해물칼국수(가게 이름 '동해해물칼국수')를 팔며 보낸 세월만 어느덧 10년이 다 됐다.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는 동네에선 이미 '맛집'으로 통한다. 점심시간만 되면, 약 99m²(30평)홀이 빼곡히 들어찬다. 근처에 대학교(중앙대, 숭실대)가 있고, 여의도와 가깝기 때문에 비교적 위치가 좋은 편이다. 하루 평균 200~230명 정도가 이곳을 찾는다. 방씨는 "예전에는 400그릇 넘게 팔 때도 있었는데, 재개발로 동네 주민들이 이사 가는 바람에 손님이 많이 줄었다"면서도 "그래도 입소문을 듣고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
▲ 해물칼국수. 그릇 안엔 오동통한 굵은 면과 함께 어른 엄지손가락만한 굴, 그리고 감자 등이 푸짐하게 담겨 있다. |
ⓒ 이승배 |
| |
국수에 들어가는 재료 직접 길러
칼국수 전문점답게, 메뉴도 칼국수, 콩국수 2개뿐이다. 아침에 칼국수 한 그릇을 먹으면 저녁 때까지 배가 꺼지지 않을 정도로, 양이 일단 푸짐하다. 특히 면 굵기가 우동 면발처럼 굵어 입안에서 굴리며 씹는 맛이 제법 좋다. 부부의 푸근한 인상만큼이나 성인 엄지 손가락만한 굴을 한가득 담아준다.
|
▲ 해물칼국수와 함께 나오는 유일한 반찬인 겉절이. 작은 단지에 담아 나와 집게로 덜어먹으면 된다. |
ⓒ 이승배 |
| |
짭조름하고 뜨끈한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면, 금세 온 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며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밤새 알코올에 시달린 속을 푸는 데 그만이다.
반찬으로 주는 배추 겉절이는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을 돋운다. 매일 아침 배추를 잘라 양념에 버무려, 거의 그날 팔기에 맛이 제대로다.
작은 단지에 담아 내어주면, 집게로 덜어먹는 식이라 깔끔하다. 어디 이뿐인가. 가격(한 그릇 4천원)까지 싸니, 영화 제목처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1997).
칼국수에 들어가는 재료는 대부분 직접 기른 것들이다. 3년 전부터 부부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서 작은 주말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밭에다가 감자, 고추, 파를 심어서 직접 길러요. 토요일 저녁 9시쯤 장사를 끝내면, 무조건 그곳으로 가요. 차로 1시간 정도면 도착하거든요. 휴일은 하루 종일 그곳에서 보내죠."
밀가루만 수입이고, 나머지는 거의 국산인 셈이다.
농장 얘기가 나오자 가게 한편에서 묵묵히 배추를 다듬던 남편 얼굴에 방긋 화색이 돈다.
"마늘은 충북 영동에 사는 누님이 육쪽마늘을 보내줘요. 강원도 홍천에 사는 처남은 콩을 부쳐주고요."
김씨는 "올 여름 콩국수할 콩도 미리 사뒀다"면서 한쪽에 쌓아놓은 콩 자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 동해해물칼국수 음식점 안. 벽에 붙은 노란 메뉴판에는 '칼국수'와 '콩국수'라고만 적혀 있다. 가격은 4천원. |
ⓒ 이승배 |
| |
입학하고, 졸업하고, 취업하고 나서는 애들 데리고 오는 손님도…
이곳 콩국수는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레어아이템'. 특별히 정해진 날짜는 없고, 좀 덥다 싶으면 팔기 시작한다. 가격도 칼국수와 같은 4000원이다. 여름이 다 끝나지 않았더라도, 콩이 떨어지면 더 이상 맛볼 수 없으니 서둘러야 한다.
쉽게 먹을 수 없는 만큼, 맛도 끝내준다. 다른 곳과는 달리 물을 많이 섞지 않고 100% 국내산 콩을 넉넉하게 갈아, 국물이 제법 걸쭉하다. 그릇째 들고,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 입안에 콩 특유의 고소한 향이 가득 퍼진다. 면은 칼국수와 같은 오동통한 굵은 면. 함께 나오는 겉절이와 함께 먹으면, 소금을 넣지 않아도 간이 딱 맞다.
"원래 요리를 잘 하느냐"고 물었더니, 방씨는 "솜씨가 없어요. 가게도 그냥 먹고 살려고 한 거죠"라며 수줍은 듯 배시시 웃었다.
한곳에서 오래 장사하다 보니, 이곳 단골은 5~6년은 기본이다.
"중앙대에 다니는 한 학생이 있었어요. 갓 입학할 때부터 줄곧 가게에 오더니, 어느새 졸업을 하고, 또 취업하고, 며칠 전엔 애들을 데리고 칼국수를 먹으러 왔더라고요. 이런 손님들을 보면 참 기분이 좋죠. 왠지 가슴도 뭉클해지고."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으니, 방씨가 이상해선지 "그런데 이런 건 왜 물어요"라고 했다. "<오마이뉴스> '우리 동네 맛집 소개하기'에 기사를 써서 낼 거"라고 말했더니,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뭘 그런 걸 해요. 하지 마요. 예전에도 방송국에서 촬영팀이 와서 몇 번 찍었는데, 전화가 자꾸 와서 장사를 못하겠더라고.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 우리 아빠(남편)도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해."
겨우겨우 설득해 "기사를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가게 안에 그 흔한 연예인 사인 한 장 없다. 부부 마음씨도 수수한 것이 담백한 칼국수 맛과 참 많이 닮았다. 영업시간 오전 10시30분~ 오후 8시30분. 전화번호 02-813-62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