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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수록 빠져드는 과메기·홍어 맛의 비밀
아미노산 증가시키는 발효·숙성 영양의 비밀
지난 11일 저녁 8시 서울 중구 무교동 Y횟집. 20여 개의 4인용 테이블은 물론 횟집 밖에 천막을 둘러친 곳에 놓인 탁자 10여 개에도 빈자리가 없었다. 모든 테이블이 과메기 손님이었다. 식당 밖에는 손님 서너 명이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주호(44·회사원)씨는 "요즘 일주일에 한번은 과메기를 먹는다"고 말했다. 식당 주인 이모씨는 "예년에도 1~2월에는 과메기 손님이 많았지만, 올해는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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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진표 헬스조선 PD
- ▲ 홍진표 헬스조선 PD
- 포항 출신 대통령 당선자 때문일까? 과메기 인기가 '열풍' 수준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포항에서 과메기 300인분을 실어날라 구내식당에서 출입기자들과 회식을 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비릿한 냄새 때문에 싫어하던 사람도 과메기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아울러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강한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홍어를 찾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홍어는 전통적으로 수정·산란기인 겨울부터 3~4월까지가 제철. 이 때가 영양분이 풍부하고 육질이 가장 좋다. 서해수산연구소 어업자원팀장 연인자 박사는 "홍어는 겨울철 낮은 온도에서 10~15일쯤 숙성시킬 때 맛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겨울이 제철인 과메기와 홍어의 공통점은 염장(鹽藏)하지 않고 발효 또는 숙성시켰다는 것. 먹을수록 빠져드는 과메기, 홍어 맛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포항과 흑산도 "더도 덜도 말고 요즘처럼만"
꽁치(예전에는 청어)를 통째로 또는 배를 갈라 겨울 바람 속에서 3~15일간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면서 발효·숙성시킨 반 건조 생선 과메기는 오래된 포항의 향토식품. 몇 년 전만 해도 마니아들의 별미 정도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포항시 과메기 매출액은 지난 2006년 400여 억 원에서 2007년에 500억 원으로 약 25% 늘었다.
포항시청 해양수산과 이성규씨는 "과메기로 인한 관광 수입 등 부가가치는 3000억~4000억 원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과메기가 주로 대형 마트나 식당 등에 납품됐으나, 요즘은 가정 수요가 늘어 전국 곳곳에 택배로 보내는 물량도 적지 않다고 한다. 포항시청은 과메기를 지역 특산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와 주민들이 참여하는 '과메기 연구센터'를 열 계획도 갖고 있다.
예로부터 전라도 지역에서 "이 것이 없으면 잔치를 못한다"고 해온 홍어. 한 때 이름난 홍어 어장인 흑산도에서 홍어가 많이 잡히지 않아 수입산 가오리가 홍어 대역을 한 적도 있으나, 2~3년 전부터 홍어가 몰려들고 있어 어민들이 희망에 들떠 있다. 흑산도수협 박선순 과장은 "홍어 생산량이 지난 2~3년간 2배쯤 늘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흑산도에서 열린 홍어 축제에는 이틀동안 5000여 명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나주시청 조경수씨는 "나주에서도 지난해에 이어 올 4월에도 홍어축제를 대대적으로 열 계획"이라고 했다.
■발효 중 늘어나는 핵산 성?! ? 감칠맛 내
과메기는 꽁치의 내장과 머리를 제거하고 반으로 갈라 대개 영하 5~6도에서 2~3일간 발효 또는 숙성 시켜 만든다. 통째로는 약 15일쯤 발효·숙성시킨다. 이렇게 하면 수분 함량이 35~40%쯤 되며,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약간 탄력이 있는 상태가 돼 먹기에 가장 좋다.
이렇게 생선을 발효·숙성시키면 조직의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 맛과 영양성분이 바뀐다. 일반적으로 맛은 더 부드러워지고 약간 단 맛이 난다. 이 때문에 일식집에서는 갓 잡은 활어보다 1~2일간 냉장고에 저장하며 발효·숙성시킨 선어(鮮魚)를 더 선호한다.
포항1대학 식품영양과 오승희 교수는 "과메기는 발효와 숙성과정에서 몸에 유익한 세균의 작용으로 탄수화물이 주식인 사람에게 부족하기 쉬운 '리신'과 '트레오닌', 그리고 성장기 어린이에게 필요한 '알기닌'과 '메치오닌' 같은 필수 아미노산이 증가한다"고 말했다. 과메기는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등이 적당히 어우러진 감칠맛이 나는데, 이는 발효와 숙성과정에서 늘어나는 핵산 성분 때문이다. 핵산 성분은 조미료 원료로도 이용된다.
전남대 해양식품공학과 김선재 교수는 "홍어는 자체 효소에 의한 화학적 변화를 거쳐 암모니아가 발생하는데, 암모니아는 강 알카리성(pH 9~12)을 띠므로 부패 세균이 증식할 수 없다. 홍어를 '부패한 음식'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홍어는 세균이 증식할 수 없어 썩지 않는다. 또 위산을 중화시키거나 장내 나쁜 세균을 억제하는 기능도 한다"고 말했다.
■과메기와 홍어는 영양의 보고(寶庫)
과메기는 발효·숙성시키기 이전의 꽁치보다 영양 성분이 더 많다. 과메기 100g에 함유된 DHA, EPA, 오메가-3 지방산은 약 7.9g으로 자연상태의 꽁치(5.8g)보다 약 36% 많다. 이들 성분은 심혈관계 질환 예방과 두뇌 성장 발달에 좋은 것으로 보고돼 있다. 또 과메기에 있는 몸에 좋은 지방은 발효·숙성과정에서 지방산과 글리세롤의 저분자 형태로 바뀌어 몸에 훨씬 쉽게 흡수된다.
아울러 지용성 비타민 A, E도 증가한다. 그러나 지방은 산패하기 쉬운 문제점이 있으므로 가공과정에서 주의해야 한다. 특히 꽁치를 반으로 갈라 말리는 '베진과메기'는 발효·숙성기간이 통으로 말리는 '통과메기'의 5분의1밖에 안되지만 지방이 공기에 직접 노출되므로 산패(酸敗) 위험성은 더 크다. 이런 이유로 베진과메기보다 통과메기를 훨씬 상! 품(上品) 으로 친다.
홍어도 숙성되는 과정에서 소화 흡수가 잘 되는 22~27종의 아미노산 결합 물질이 생성되고, 비만과 주름 예방 등의 효과가 있는 콜라겐이 소화·흡수가 잘되는 젤라틴으로 바뀐다. 홍어에 함유된 단백질의 일종인 '콘드로이친 황산'은 혈관 확장 보조제로도 쓰인다. 아울러 관절염, 류머티즘, 골다공증 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어는 과메기에 비해 오메가-3 등 몸에 좋은 지방 함유량이 적은 대신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주는 리놀레산, 리놀렌산, 아라키돈산 등이 풍부하다.
한편 과메기나 홍어의 안전성은 보건 당국이 꼼꼼하게 체크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과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은 부정기적으로 이들 생선에 대해 일반 세균과 대장균, 수은과 납 등 중금속 검출 등 검사를 한다.
/ 이금숙 헬스조선 기자 lk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