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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53 어머니 같은 촛농, 하트를 그리다

이즘(ism) 2008. 1. 10. 10:38
윤종호 님께서 보내신 OhmyNews의 기사입니다.
  
초 하나가 일주일 동안 집안을 밝혔다.
ⓒ 임윤수
촉석루


거실에 켜놓은 촛불 하나가 일주일이 넘도록 집 안을 밝혔다. 어떤 사연이 있는 촛불이라기보다는 서정적이고 정서적인 촛불이다. 정서와 종교의 영역이 애매모호해지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집안에 밝혀 둔 촛불은 성장배경에서 가지게 된 어머니의 마음이며 시골정서의 촛불이다.

 

어둠을 밝히기 위한 수단이 아님에도 꼬마전구만도 못한 촛불을 일주일씩이나 집안에 밝혔다고 하면 상상력 풍부한 입장에서는 종교에서 기인한 요식행위나 미신쯤으로 몰아붙이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종교(신앙)와 정서의 차이는 얼마 전 치러진 대선에서 선출된 대통령 당선인이 투표일과 겹친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 대신 무국을 먹었다는 게 우리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정서의 일단이라고 생각된다.

 

  
처음엔 팔뚝만큼이나 굵고 길었던 초에 불을 붙였다.
ⓒ 임윤수


 

  
초는 우물을 만들었고, 그 우물에는 촛불도 잠겼다.
ⓒ 임윤수


웬만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 기독교신자인 대통령당선인이나 그 가족들이 미신을 믿어서 생일날 아침상에 미역국을 마다하고 무국을 올렸을까? 아니다. 미신 때문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 때문에 기독교인임에도 생일상이라면 당연이 올라야 할 미역국 대신 무국을 올렸을 거다.

 

변명 같은 상황설명이 너무 길어졌지만 촛불을 보면 필자는 어둠을 밝힌다는 광명(光明)보다는 기도하던 어머니가 먼저 생각난다. 동글동글 흘러내리는 촛농을 보고 있노라면 애간장을 녹이던 어머니, 죽어가는 지아비를 바라보며 뚝뚝 눈물 흘리던 안타까움이 떠오른다.

 

정초인 이맘때 한겨울, 물에 젖은 손으로 잡으면 쩍하고 문고리가 달라붙을 만큼 추웠던 한겨울에도 장독대나 부뚜막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 놓고 촛불 하나를 밝혀 놓던 어머니의 기도가 생각난다.

 

일상이 저물어 주변이 다소곳해진 시간이면 어머니는 터주신이나 조왕신, 성주신에게 치성을 드렸었다. 들리는 특별한 기도문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별다른 요식행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보이는 것도 없었고, 들리는 것도 없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촛불 앞에 선 어머니, 어머니 앞에 밝혀졌던 촛불은 가슴으로 느껴지는 느낌의 기도였으며 부지불식간의 정서가 되었다.

 

  
꼬박 3일이 지나니 초가 양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 임윤수


 

  
흘러내린 초가 하트모양을 만들었다.
ⓒ 임윤수


촛불을 밝히는 날에는 제아무리 추운 날이어도 찬물에라도 세수를 하는 건 기본이고 옷매무시를 고르고, 머리를 매만지고 나서야 정화수를 떠놓고 촛불을 밝혔었다.

 

어머니의 기도는 콧바람에조차 간드랑거리는 촛불 앞에 서서 숨소리까지 죽여 가며 싹싹 두 손을 비는 게 전부였으니 들릴 것도, 보일 것도 없었다. 애절한 어머니의 모습은 하얀색이었던 사기그릇, 정화수 그릇에도 비췄고 흔들리는 촛불에도 비췄었으니 땅으로 스며들고 하늘로 솟았을 거다. 

 

어머니의 기도는 간절했지만 소박했다. 집안의 모든 식구들이 건강하게 해 달라는 기원, 멀리 집 나가 있는 자식들이 객지에서 덜 고생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 시험을 얼마 남기지 않은 자식들이 턱 하고 붙어 주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었음이 지금도 느껴진다. 촛불 앞에서 선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란 필자이기게 촛불은 기원하는 마음을 대신하는 정서의 불빛이며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런 어머니의 정서가 그리워 정초에 커다란 양초를 하나 사다 거실에 밝혔다. 새것이었을 때는 그 길이가 60~70센티미터쯤 되던 초가 하루 이틀 타들어 가며 길이가 줄었지만 촛불은 일주일이나 집 안을 밝혔다.

 

  
그 커다랗던 초가 다 타들어가고 얼마 남지 않았다.
ⓒ 임윤수
촛농


 

  
녹아내리던 촛농은 자식들을 지키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독수리형상도 만들었다.
ⓒ 임윤수
촛농


며칠 밝히면 크기가 줄어줄고, 그렇게 타다 흔적 없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초가 3일째부터 양쪽으로 갈라지며 어떤 형상을 만들어 갔다. 녹아내리는 촛농을 다 태우지 못하고 흘러내리더니 마냥 아래쪽으로만 흘러내리지 않고 조금씩 뭉쳐지기 시작한다. 가닥이 잡힌 형상에 흘러내리는 촛농이 더해지면서 점차 안으로 휘어지더니 나흘 밤을 지내고 나니 연꽃 모양으로 피어나더니 하루가 지나니 하트 모양을 이루고 있다.

 

하트 모양을 하고 있는 촛농 덩어리에서 어머니의 정성이 느껴진다. 물기가 남아 있는 손으로 놋그릇이라도 만지려면 쩍쩍 손이 들어붙을 만큼 추운 한겨울에도 두 손 곱게 모으고 촛불 앞에 서 있던 어머니의 모습,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그 느낌이 크게 다가오는 어머니의 두 손이 촛농으로 만들어져 있다.

 

일주일 가까이를 밝히니 팔뚝보다도 길었던 촛대는 거반 앉은뱅이 촛불이 되었다. 나이를 먹으며 점점 작아진 어머니, 꼿꼿했던 허리가 구붕해지며 더 작게만 보이던 어머니처럼 앉은뱅이 초가 되었다.

 

자식들 걱정은 늙어서도 놓지 못하는 어머니처럼 촛불도 앉은뱅이가 되어서도 밝음은 놓지 않았다. 자식들을 챙기느라 종종걸음을 치던 구부렁거리는 발걸음을 놓던 어머니처럼 미처 태우지 못하고 흘려보냈던 촛농까지 알뜰하게 태우려는 듯 생명을 다한 촛불도 모습은 흔들릴지언정 불꽃만은 놓지 않았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내쉬던 가쁜 숨처럼 헐떡헐떡 불꽃을 뿜어내더니 이제야 수명을 다한 듯 눈물 같은 촛농 몇 방울만 남긴 채 촛불은 사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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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같은 촉농 일주일째 집안을 밝히던 초는 앉은뱅이가 되어서도 미처 태우지 못해 흘려보냈던 촛농까지 알뜰하게 태우려는 듯 구부렁거리는 할머니의 발걸음으로 불꽃을 멈추지 않더니 수명을 다하며 눈물 같은 촛농 몇 방울만 남긴 채 사그라졌다.
ⓒ 임윤수
촛농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촛불이지만 일주일간 집 안을 밝혔던 촛불은 자식들이 잘 되기를 빌던 어머니의 마음이며 정성이었다. 흘러내리던 촛농은 어머니의 삭신에 흐르던 고단함이며 가슴으로 흐르던 서러움의 눈물이었을지라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흘러내리던 촛농이 더없이 뜨거워진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오늘도 촛농보다도 진한 마음으로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거린다.

 

어머니의 두 손 같고, 아버지의 가슴 같은 촛불을 신년 벽두에 일주일씩이나 밝혔으니 올 한해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다. 

 

어릴 때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리워 피웠던 촛불에서 느끼는 정서는 햇살에 드러난 서릿발일지언정 이렇게 저렇게 덮어주려는 목화솜 같은 온화함이며, 동그라미 같은 끝없음이었다. 촛농 같은 눈물 뚝뚝 흘리는 부모의 마음이 되어 마침표를 찍고 싶다. 

2008.01.08 09:31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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