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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a132 길상사

이즘(ism) 2008. 10. 12. 07:49

성북동의 조용하고 큼지막한 주택가들 사이에 자리 잡은 길상사. 세속(世俗)에 있으나 세속적이지 않은 사찰로 그 이름을 알렸다. 번듯한 주택가를 마주보고 생뚱맞게 서 있지만,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깊은 산사의 고요함이 우리를 반겨준다.

짧은 역사를 지닌 길상사는 특이한 이력 때문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지금의 길상사 터는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1960~ 80년대까지 최고급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 자리다. 요정시대가 막을 내린 뒤 주인 김영한 씨(법명:길상화)가 7천여 평 대지와 건물 40여 동 등 1천억원대의 부동산 전체를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 길상사로 탈바꿈된 것.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이미지 그대로 ‘투명한 운영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사찰의 주수입인 시주에 연연하지 않고 연등에 값을 매기지 않으며, 건강한 사회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타 종교와의 화합을 모색한다. 법정 스님의 법문을 가끔이라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길상사를 청정도량으로 지켜가기 위한 분명한 원칙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일주문으로부터 불과 몇 발자국 들어섰을 뿐이건만, 길상사는 아주 낯선 세계처럼 다가온다. 시린 겨울 하늘과 고목과 맑은 풍경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지며 가깝지만 멀리 와 있는 느낌이다. 숲 속에 위치한 탓에 도심에 비해 기온도 1~2℃ 정도 더 낮다.

길상사의 중심은 정면의 극락전. 극락전은 단청의 화려함이나 고건축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오래된 느티나무와 단정한 앞마당과 함께 단순하며 정갈한 침묵이 흐른다. 자연히 두 손을 공손히, 두 발을 고요하게 움직이게 만드는 사찰 특유의 침묵 말이다.

극락전 오른쪽에 ‘맑고 향기롭게’라는 시민 단체의 건물이 보이고, 그 건물 앞으로 극락전을 감싸는 언덕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스님들의 수행 처소들이 나무 위 새집처럼 앉아 있다. 수행 처소를 지날 때는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 옆으로 난 다리 건너에는 길상사를 시주한 길상화 보살의 시주 공덕비가 서 있다. 평생을 벌어 헌사하고 간 그는 죽어서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산책로의 끝에는 작은 찻집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뜨뜻한 온돌에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는 이곳은 마치 고택의 사랑방처럼 아늑하다. 계곡 쪽으로 창을 내어 계절의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눈 내리는 날 이곳에서 바라보는 길상사의 모습 또한 그만이다.

해우소 가는 길에는 눈에 띄는 관세음보살 석상 하나가 있다. 마치 마리아상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석상은 천주교 신자인 유명 조각가 최종태 씨가 불모(佛母)를 자청해,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관세음보살이다. 종교의 벽을 넘어 화해와 포용의 공간, 만남의 장소가 되는 것도 길상사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길상선원’을 열어 일반인에게 선방을 적극 개방하는가 하면 극락전의 왼쪽 언덕에 위치한 침묵의 집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명상센터로 유명하다. 단 10분이라도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 그러한 공간을 부담 없이 누려보는 것은 길상사만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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